:: ::
카이사는 체스의 여신을 뜻합니다.
이 곳에 연재되는 글은 체스 역사와 국내외의 체스이벤트에 대한 컬럼 소개입니다.
단,덧글에 비방, 비난 및 음담패설에 관련된 글은 관리자의 판단 하에 무조건 삭제됩니다.
닉 네 임 송진우
제      목 6. 해리 넬슨 필스버리 (Harry Nelson Pillsbury, 1872~1906)
이  메 일 efan@naver.com
날      짜 2008-02-09 조  회 수 2210
첨부파일
해리 넬슨 필스버리 (Harry Nelson Pillsbury, 1872~1906)

1872년 미국 매사츄세츠주 서머빌에서 태어나 16살 때 체스를 배웠다고 한다. 체스를 처음 배운지 2년 만에 마스터급 스톤(H.N.Stone)을 5대2로, 다시 2년 뒤엔 당시 세계 챔피언 슈타이니츠가 폰 1개를 빼고 둔 대결에서 2대1로 이겼다. 그 후 뉴욕의 부룩클린 체스 클럽에서 프로 체스선수로 활동했다.

1895년 영국 헤이스팅스에서 열린 국제 체스대회에 부룩클린 체스 클럽 대표이자 실질적인 미국 대표로 참가했다. 당시 세계 챔피언 라스커와 전 챔피언 슈타이니츠 이외에도 타라쉬, 쉬고린 등등 당대 최고수들이 총 집합했던 이 대회에서 (미국 밖에선) 무명이었던 필스버리가 당당히 우승해 세계 체스계가 경악했다. 같은 해 말 라스커, 슈타이니츠, 쉬고린과 함께 러시아 상 페테스부르그에 초청되어 4명이서 실질적인 세계 최강자를 가리게 됐다.

전반 9라운드까지 필스버리가 단독선두를 달리며 천하를 정복하는 듯 했으나 5일간의 휴식 후에 진행된 제10라운드에서 당시 챔피언 라스커와 맞붙어 완패했다. 이 대국은 1851년 안더슨의 ‘불멸의 대국’과 더불어 현재까지 역사상 최고의 명국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개인적 의견의 차이는 있겠으나 보통 10선에는 거의 언제나 꼽힌다.) 그 후 필스버리는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거의 모든 대국에서 패배, 4명 중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일설에는 5일간의 휴식 기간 매독에 감염됐다고 한다. 그 후 병세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며 세계 정상급과 거리가 멀어지다 1906년 매독으로 사망했다.

매독으로 사망한 것이 거의 정설이나 필스버리의 최후에 대한 다른 일설도 있다. 어느 비 오던 날 사랑하던 연인과 (유부녀였다고 하며 필스버리 자신도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헤어져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나 빗물에 젖은 권총이 불발됐고, 다시 강물에 뛰어들었다 구조되어 병원으로 (일설에는 정신병원이라 한다.) 옮겨졌으나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34살에 요절한 필스버리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실하지 않아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그저 야담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성 싶다. 청교도인 가정에서 자랐으나 오히려 부모에 대한 반항이었는지 ‘술, 여자, 시가는 인생의 필수품’이라 했을 정도로 필스버리의 생활은 매우 방탕했다. 확실한 것은 그가 천재였다는 것이다. 최고 21대국까지 눈가리개를 하고 다면기를 뒀으며, 체스 10대국과 체커스 10대국을 동시에 눈가리개를 하고 두기도 했다.

전 세계를 곳곳을 돌며 시범 다면기를 뒀으며, 쿠바에서는 12살이었던 훗날 3대 챔피언 호세 라울 카파블랑카 (Jose Raul Capablanca, 1888~1942), 러시아에서는 10살이었던 4대 세계 챔피언 알렉산더 알렉킨 (Alexander Alekhine, 1892~1946)이 각각 필스버리의 다면기에 참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 비록 필스버리가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요절했지만 체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었다.
[2011-05-06 14:31:37] 전용준 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