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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는 체스의 여신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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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네 임 송진우
제      목 4. 폴 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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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2007-11-23 조  회 수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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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모피 (Paul Morphy, 1837 ~ 1884) - 혜성 같이 나타났다 사라진 체스 천재.

역사상 타고난 체스 천재를 꼽자면 폴 모피를 뺄 수 없다. 1837년 6월 22일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모피 가문은 대대로 법률가였으며 아버지 알론소 모피는 루이지애나 주 검사장과 주 의원까지 지냈던 명문가였다. 어려서 아버지와 삼촌간의 대국을 구경만하면서 스스로 체스 두는 법을 깨우쳤다고 하며, 9살에는 뉴올리언스 주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었고, 12살 때 뉴올린즈를 방문했던 헝가리 마스터 요한 로웬탈(1810 ~ 1876) 마저 3전 전승으로 물리친다.

대학과 법률 공부를 위해 한동안 체스를 접었던 모피는 18살에 대학 졸업과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한다. 21세가 돼야 변호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던 당시 법에 의해 한동안 다시 소일거리로 체스를 시작한다. 1857년 뉴욕에서 열린 전미 체스 챔피언십 결승에서 당대 미국의 최강자라 불리던 루이스 폴슨(미국/독일, 1833~1891)을 결승에서 5승2무1패로 꺾는다.

그 직후 영국으로 넘어가 하워드 스톤턴을 제외한 영국 최 고수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다시 프랑스 파리로 넘어가 유명한 데 라 레젠스 카페에서 프랑스 최 고수들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1851년 런던대회 우승자 아돌프 안더슨 마저 7승2무2패로 누르고 일약 비공식 세계 챔피언이 된다.

1859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간 모피는 당대 영국 최고수라 불리던 쥴스 리비에, 사뮤엘 보든, 토마스 반즈, 요한 로웬탈, 헨리 버드 5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다면기에서 2승2무1패로 승리한다. 한동안 하워드 스톤턴과의 대전을 성사 시키려 했으나 무위로 끝난다. 이 부분에 대해 스톤턴이 고의적으로 회피했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어쨌든 이미 전성기를 훨씬 넘긴 중년의 스톤턴이 모피의 적수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여론이 대세다.

다시 고향을 향해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간 모피는 세계 챔피언에 준하는 영웅대접을 받는다. 뉴올리언스까지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거치며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고향에 도착 변호사 개업을 한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1861년 미국 내전이 발발하자 남부의 독립을 반대하며 남부군의 징집을 피해 다시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미국 내전 종전 후 다시 귀향해 변호사 개업을 하나, 전쟁 중 남부 독립의 반대와 징집 회피 경력으로 인해 뉴올리언스 인들로부터 소외당한다. 모피의 변호사 사무실에는 가끔 멀리서 체스에 관련된 일로 찾아온 사람 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 체스를 포커와 비슷한 도박 정도로 인식하던 미국 남부 보수적인 아버지와 주변 환경으로 인해 체스에도 복귀하지 못하며 여생을 쓸쓸하게 혼자 보내던 모피는 47세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폴 모피는 프랑스의 프랑소와 필리도와 영국의 하워드 스톤턴의 계보를 있는 근대적 체스의 초석을 다진 한 명이다. 주로 타고난 천재들이 깊은 위치적 전략 보다 전술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모피는 깊은 전략으로 당대 마스터들을 뛰어넘었을 뿐만 아니라, 체스 이론을 한 걸음 발전시킨 인물이다.
[2010-08-22 15:30:50] dlgofkd 님의 글
와우!!!!!!!!!!!!!!!!!!!!!!!!!!!!!!!!!!!!!!!!!!!!!!!!!!!!!!!!!!!!!!!!!!!!!!!!!!!!!!!!!!!!!!!!!!!!!!!!!!!!!!!!!!!!!!!!!!!!!!!!!!!!!!!!!!!!!!!!!!!!!!!!!!!!!!!!!!!!!!!!!!!!!!!!!!!!!!!!!!!!!!!!!!!!!!!!!!!!!!!!!!!!!!!!!!!!!